- 演講或講座
- 人文社會科學研究中心
- 地點
中央研究院 人社中心第二會議室B
- 演講人姓名
崔洛民博士 韓國海洋大學國際海洋問題研究所 教授
- 活動狀態
確定
- 活動網址
本文以高麗末期至朝鮮後期為時間範圍,
高麗末期李崇仁的詩作,呈現出依據衣冠、語言、
十六世紀以後,朝鮮與琉球的接觸空間由朝鮮朝廷轉移至明朝京師。
總而言之,在朝鮮知識分子的認識中,
關鍵詞: 琉球、朝鮮知識分子、衣冠、漢詩酬唱、使行錄、交鄰、文明認識
이 논문은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조선 지식인이 남긴 유구 관련 시문과 사행록·역사 기록을
검토하여 유구 인식의 형성과 변화를 고찰한 것이다. 특히 조선 지식인이 유구 사신의 의관과 한시
수창 능력을 각각 禮와 文을 드러내는 문명의 표지이자 상대의 문화적 위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고려 말 이숭인의 시에서는 의관·언어·진공·예법을 기준으로 유구 사신의 문명적 위치를 판별하는
화이론적 시선이 나타난다. 반면 고려 조정의 외교 기록에서는 피로인을 송환한 유구 사절을 예로써
수용하고 호혜적으로 응답하는 교린의 원칙이 확인된다. 조선 전기 직접 교류기에는 명의 책봉, 中朝의
관복, 예의와 문학의 습득 여부가 유구 사절의 접대 등급과 신뢰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였다.
특히 유구 외교를 중개한 일본 승려와 조선 문신의 한시 수창은 사절의 문화적 신뢰성을 확인하고
공식적인 외교 접촉을 문인적 교유로 전환하는 매개가 되었다.
16세기 이후 양국의 접촉 공간이 조선 조정에서 명의 수도로 이동하면서, 유구는 황제의 은택과 詩書禮
樂을 공유하는 조공국이자 문인적 교유가 가능한 상대로 인식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북경에서의 접촉
공간, 역관의 매개, 기록자의 신분과 관심에 따라 유구 인식이 분화하였다. 유구인의 의관은 청 중심
질서에 대한 태도와 문명적 위치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지만, 同文과 한시 수창은 언어와 복식의
차이를 넘어 상호 문인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였다. 한편 앵무·물소와 같은 진상품은 왕덕과 원방의
조공 또는 남방 자원의 공급을 표상하였고, 해라·부채·단도 등의 증여물은 일시적인 만남을 지속적인
교유의 기억으로 전환하였다.
결국 조선 지식인에게 유구는 낯선 의관과 언어를 지닌 먼 해상국이면서도 한문과 예문을 공유하는
문명적 동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동류 의식은 상호 평등을 의미하지 않았다. 조선 지식인은 자국의 禮
와 文을 기준으로 유구를 포섭하는 동시에 문화적으로 구별하고 위계화하였다. 조선 지식인의 유구
인식은 문명적 연대와 문화적 차등화가 함께 작동한 복합적 인식이었다.
주제어: 유구, 조선 지식인, 의관, 한시 수창, 사행록, 교린, 문명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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